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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의 성의를 무시하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.

25701by 2025. 5. 24. 21:3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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.가족이라는 울타리, 그리고 나의 자리

삼남매의 엄마이자, 스물다섯 된 손녀를 키워낸 할머니로 살아오며 나는 늘 ‘가족이 잘 지내기를’ 바라는 마음 하나로 움직여 왔다. 큰딸이 힘든 결혼생활 끝에 아이를 맡긴 건 손녀가 세 살 때였고, 그때부터 나는 엄마처럼 손녀를 키워냈다. 지금은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, 따뜻한 아이로 자랐다. 아들도 남매를 기르며 잘 살고 있고,  막내딸도 잘 지내고 있다. 겉으로 보면 다 괜찮아 보인다. 그런데 어버이날을 앞두고 작은 오해 하나가, 내가 사랑으로 쌓아온 이 울타리를 잠시 흔들었다.


조용히 준비한 정성, 그리고 작은 계산

5월 8일 어버이날, 자녀들은 직장 때문에 10일 토요일 저녁에 함께하기로 했고, 큰딸은 "엄마, 아무것도 하지 마요. 제가 다 준비할게요"라고 했다. 그 말만으로도 고마웠다. 하지만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. 큰딸이 다 준비하면 어차피 카드로 결제 하니까  카드값 때문에 늘 마음이 무겁고, 가족이 모이면 결국 식사 비용도 카드로 결제될 텐데… 싶었다. 그래서 조금이라도 아끼자는 생각에 장을 보고, 자녀들이 좋아하는 돈가스, 수육을  해주려고 고기를 사 왔다. 내 나름의 계산은, "내가 조금 수고 하더라도 아끼자는 마음 이었는데. 큰 딸은 엄마의 그런 행동이 정말 속이 상한가 보다.단 하루라도 엄마를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을 다치게 했으니 내가 잘못한 거다.


 예기치 못한 오해, 서러운 순간

장을 보고 들어오자마자 손녀가 화를 냈다. “삼춘 오는데 왜 생활비 카드로 장을 봐 왔느냐”며 목소리를 높였다.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. 평소엔 따뜻하던 아이가 왜 이렇게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을까. 나는 그냥 가족들 위해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뿐인데, 그 마음이 ‘오지랖’처럼 보였던 걸까. 결국 속상한 마음에 장 본 물건을 환불하고, 손녀에게 카톡으로 10만 원을 보내며 조용히 정리했다. 내가 경제적 자유가 있었다면 환불 하지 않았을텐데. 남편이 원망스럽고 그 순간 마음이 서럽고, 기가 막혀 눈물이 났다. 나의 진심이, 왜 이렇게까지 무시당해야 했을까.


미안함과 거리감 사이

손녀는 내가 키우면서 사랑을 듬뿍주며 길렀는데, 그 사랑이 다른곳으로 가는거 같아 서운 했나보다. 그리고 큰딸은 ‘미리 말하지 않은 행동’에 서운 함이 있었던 것 같다. 나는 뒤늦게야 그 마음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. 그래서 손녀에게 먼저 사과했다. “너희들 성의 무시하고, 내가 한 행동 미안해.” 다행히 손녀는 금세 풀렸다. 하지만 나의 마음 어딘가엔 작은 금이 간 느낌이 남았다. 큰딸과 손녀가 내가 아들만 생각하고, 아들 편만 드는 사람이라고 느끼는거 같아  그게 가장 두렵고 마음이 아프다.


 마음이 닫히는 순간들

막내딸마저 "왜 의논도 없이 하느냐"고 나무라며, 내 마음은 점점 더 위축됐다. 누구 하나 내 입장을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다. 결국 아들에게도 "오지 말라"고 연락을 해버렸다.  의아한 아들에게 너네 아빠와 다툼이 있어 마음이 안 좋으니 오지 말라고 했다. 전화가 왔으나 안 받았다. 가족들이 모두 모이기를 바랐던 그날, 나는 저녁 대신 울컥한 감정을 삼키며 보냈다.다음날  아들은 누나도 전화를 안받고, 밤새 잠을 못 잤다면서, 누나 한테 사실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.통화 끝에 “아빠가 가 손주들 보고 싶어 했다는 말을 전했다. 그렇게 서로를 위하던 가족이었는데, 단 하루의 오해로 우리 사이가 이렇게 서먹해질까봐...  답답했다.


 여전히 가족을 위하는 마음으로

내가 하고 싶었던 건, 지출을 줄이고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 마음 하나였다.  이제는 작은 배려도 '간섭'으로 느껴질까 봐, 가족에게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엔 조심스러워진다.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삼남매를 사랑하고, 자녀들이  허물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고, 손녀와도 지금처럼 다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. 우리는 결국 가족이니까. 시간이 지나면, 이 작은 상처도 추억 속에 묻히겠지.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.

 

 
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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